
요한은 살아남지 못했다.
캐피톨로 갔던 구출조가 붙잡혀 있던 인질들을 모두 데려왔는데 요한만 돌아오지 못했다.
“왜….”
“미안해 소피아.”
“아.. 아아, 아아아아악!!!!”
“칼락!!!”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팔에 연결된 링거를 뜯고 복도로 나가자 총사령관의 연설이 들려왔다.
“오늘 …는 약속, …것입니다. 절대 굴복하.. 나 …기하지 않고 새로운 판엠을 건… 것이라…”
그날 소피아는 이 지독한 악몽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이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요한만 죽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경기장에 남는 건 역시 나였어야 했는데. 그런데. 왜. 요한이 왜 죽어야 해. 캐피톨에게 고문당하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게 잘못된 건가.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원망의 화살은 총사령관에게로 향했다.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이번에는 2구역으로 갈 거다.”
“….”
“거기서 새로운 사람이 합류할 테니, 알고 있어.”
13구역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캐피톨과 싸웠지만 여전히 확실한 승리의 깃발은 희미하게만 보이고 있었다. 요한이 죽은 뒤 소피아는 임무를 다닐 때 항상 칼과 같은 임무에 배정받았다. 상태가 안 좋은 게 뻔히 보였던 건지 홍보물에 쓸 영상을 찍는 빈도수도 줄어들었다.
소피아는 총사령관인 예현은 대면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예현은 그런 그녀를 배려하며 칼을 통해 그녀에게 말을 전했다. 소피아에게는 그런 행동조차 그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전투할 때면 살아남기 위해 요한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끔 이성을 잡지 못할 때는 칼이 자신을 말려줬다. 차라리 요한을 따라 가면 나을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요한을 멍하니 떠올려 보곤 했다.
“보고 싶어 요한.”
우웅-
차 소리가 들렸다. 평화유지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두 몸을 긴장시켰지만, 분대장인 윤만이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류한다던 놈이다. 긴장 풀어.”
그럼에도 팀원들은 무기를 든 채 차에 접근했다. 검은 차에서 내린 건 남자였다. 흔하지 않은 색을 가지고 있는 자는 최근 반란군 내에서 유명한 소문의 대상이었다.
“힐데! 잘 지냈어?”
캐피톨의 대통령인 콜튼과 가까운 사이였다던 소문이 진짜일까.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 건지. 저 사람의 행동 또한 요한이 죽는 것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런 그를 반란군에 받아들인 총사령관이 이해되지 않았다.
철컥.
“소피아.”
“저놈을 어떻게 믿고 같이 움직여. 너도 얘기 들었잖아.”
“네가 믿고 말고는 상관없는 걸 알 텐데.”
최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소피아는 힐데베르트라는 자를 경계하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허튼짓하는 순간 바로 총을 들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다. 아미의 말에 따르면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는데…
힐데베르트와 같이 다니면서 소피아는 생각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괜찮으냐고 물어오는 사람을 증오만 하기는 쉽지 않았다.
콜튼이 숨겨놓은 포드를 피하다 부상을 입은 팀원이 늘어났다.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였다. 캐피톨의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고 반란군들은 캐피톨로 몰려들었다.
칼이 평화유지군에 잡혀가는 모습을 보곤 떨어진 폭탄의 범위에 휘말렸다.
“소피아.”
“…그래.”
닫혀있던 병실의 문이 열리며 새까만 눈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곁에는 힐데베르트도 함께였다.
“네가 깨어나면 회의실로 오라는 총사령관의 명령이 있었다.”
“불편하시면 안 가도 됩니다.”
“갈게.”
도착한 회의실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마지막까지 함께 움직였던 팀원들은 자리에 이미 앉아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판엠에서는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의 헝거게임은 없어.”
콜튼의 사형일이 정해졌다. 조공인이 되어 마차를 타고 갔던 길로 힐데베르트가 걸어왔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손이 떨렸다.
힐데베르트는 평소 쓰던 검이 아닌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짧은 호흡이 지나고 창은 기둥에 묶인 콜튼에게 박혀 들었다. 하얀 옷 위로 피가 검붉게 번져갔다.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한 발짝 물러나는 힐데베르트에게 속으로만 고마움을 표시하며 붉게 변한 옷 위로 단검을 꽂았다.
***
기차는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처럼 소리를 내었다.
“잘 지내라.”
“너도. 새 보고 싶으면 놀러 와.”
칼은 눈을 크게 뜨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래.”
소피아는 이제 예현을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 남지 않고 요한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걸까 말리던 사람들도 가끔 찾아가겠다며 그녀를 순순히 보내줬다.
기차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요한.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