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인은 아는 후배에게 추천받았다며 비행기표 두 장을 보내왔다.
 [이쪽으로 올 수 있으신가요.]
 안 갈 생각은 없었지만, 비행기표 뒤에 따라온 금액을 보자 거절할 생각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예현, 해외출장이야.”
 “어디인지 알려주시면 표 예약할게요.”
 “의뢰인이 보내주셨어. 짐만 챙겨서 바로 공항으로 가자.”
 “바로 가는 건가요?”
 “오늘 저녁 비행기거든. 의뢰인이 성격이 급한가 봐. 아니면 상황이 급하거나.”
 
 예현은 잠시 보였던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가방에 짐을 챙겼다. 이런 일이 가끔 있었기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힐데의 짐까지 챙겨 공항으로 가자 비행기의 출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밥 먹고 탑승장에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
 “여기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누들을 파는데 그거 드실래요?”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난 잠깐 볼 게 있어서.”
 “네.”

***

 예현은 고등학생 때부터 몸이 자주 아팠다. 인간이 아닌 것들이 눈에 보였고 이상한 것들이 예현의 몸을 탐내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에게는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어른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머리가 굉장히 좋고, 관련된 쪽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었다.

 “이 사람 찾아가 봐.”
 “이분 되게 유명한 무당 아니야..?”
 “어.”
 “…나 신병 앓는 건가.”
 “아마도. 가 봐. 그 무당이 보면 알겠지.”

 윤이 소개해 준 건 무당이었다.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윤의 말에 따르면 최근 들어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는 않지만 귀신을 퇴마하는 것에 전문이라던데.... 그럼 무당이라기 보다는 퇴마사 아냐? 굿도 자주 하고 미래도 잘 본다더라. 그래..?

 “그럼 신병도 없애줄 수 있는 건가.”

 윤이 건네준 종이에 적힌 곳은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마을 중앙에 유일하게 세워진 작은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의 뒤로는 거대한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왔을 것 같은 나무는 노을빛을 받아 이파리가 금색으로 빛났다. 도무지 이 세상의 것처럼 보이지 않는 광견이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낀 예현은 멍하니 나무를 쳐다보다 자신이 이곳을 찾아온 목적을 깨달았다.

 “저… 계시나요?”

 조용한 오두막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건가 싶어 몸을 돌리던 순간 문이 덜컥, 열렸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신기하게도 눈이 금색이었다. 진짜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반짝이는 금색.

 “돌아갈 생각은 없지?”
 “네.”
 “들어와.”

 무당이란 사람은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매체에서나 보던 무복을 평소에도 입는 건 아닌가 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검은 츄리닝 셋업을 입은 모습이 옆집에 사는 이웃과도 비슷한 느낌을 줬다. 물론 생김새만 그랬다. 예현은 무당의 주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힘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다.

 “눈은 반쯤 열렸는데… 혹시 몸이 자주 아프니?”
 “심하게 아픈 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에요.”
 “네 몸은 귀신들이 빙의하기 좋은 체질이라 더 위험한데 그런 일은 없었나 보네. 주변에 기가 센 인간이 있나 봐.”

 윤을 얘기하시는 건가.

 “제 몸이 아픈 이유가 뭘까요 선생님.”
 “신병이야.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안 아플 수가 있을까요…”
 “내가 부적 써줄 테니까 다시 돌아가는 건 어때.”
 “저는,”

 다정하면서도 매정한 눈이었다. 부적이라. 예현은 무당을 보자마자 결정을 내렸었다. 만약 자신이 정말 신병에 걸린 게 맞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저는 선생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예현!!”
 “신아들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실제로 당신의 대자이기도 하니까요. 오랜만이에요 힐데.”
 “하…”

 예현은 흐릿하게만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에 내가 너의 대부라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금색 눈. 똑같이 자줏빛 노을 아래에서 다정하게 빛나던 사람. 그 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예현도 정말 몰랐다.

 “맞으시죠. 저 어릴 때 보러 오셨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있었구나…”

 힐데베르트는 일단 예현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현. 오랜만이야.”
 [예.]
 “네 아들이 신병을 앓고 있는데 넌 알고 있었냐.”
 [아뇨.]
 “왜.”
 [관심이 없었습니다.]
 “….”
 [앞으로도 관심은 없을 테니 소식 전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전화한다는 말에 예현의 안색이 안 좋아진 이유가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네.”
 “오늘 바로는 어려워. 여기서 자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제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에요.”
 “그래그래. 위층에 침대 있는 방 가서 자면 돼.”
 
 다음날 예현은 힐데를 통해 신내림을 받고 그의 신아들이 되었다. 힐데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예현을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았다.
 힐데는 예현을 데리고 여러 곳을 다녔다. 유명한만큼 들어오는 의뢰의 수가 적지 않았다. 정신없이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지냈다.
 윤은 장의사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미가 이곳저곳을 다니는 걸 좋아해 땅을 보면 윤이 거기에 관을 묻는 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집안일로 알게 된 고위직들을 깔끔하게 보내주고 있다는 말에 설마 직접 죽인다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꽤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끔 같이 일하기도 하며 힐데도 최 남매와 가까워졌다.

***

 “잠시 저희끼리만 볼 수 있을까요.”
 “…네.”

 문밖으로 나가는 인간들의 눈에서는 익숙한 의심이 읽혔다. 힐데베르트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려 칭얼대는 아기의 주변을 살폈다. 예현이 옆에서 힐데가 가르쳐준 경을 외우자 힐데베르트는 아이의 눈을 보았다.

 “들어오시라고 해.”
 “네.”
 
 “끝난 건가요?”
 “집에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더 있으신가요. 아기의 아버지랑… 할아버지?”
 “그걸 어떻..!”

 인간들의 의심에서 놀람으로 바뀌는 저 표정은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귀찮음까지 들게 했다. 그래도 이렇게 작은 아기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이러면 안 되지.
 여자는 힐데베르트와 예현을 데리고 온 남자에게 그들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넓은 도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젊은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얘기 전해 들었습니다. 박지용입니다.”
 “힐데베르트 탈레브입니다.”
 “아 한국인이 아니신가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아뇨 그럴 리가요.”

 대저택은 넓었지만 전체적으로 그늘이 져 있었다. 중앙의 계단 너머로 물건이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그 누구도 그 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간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힐데베르트는 그런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형님께서 죽고 나서 그때부터 저한테 또 갓 태어난 아들한테도 시작됐습니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가 귀에다 비명을 지릅니다. 목을 조르고요.”
 “장손들 핏줄 돌림… 처음에는 유전병을 의심하다가 나중에는 집터가 문제라며 이사까지 다니기도 합니다.”
 “그림자…”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림자가 보이더군요. 쉽게 말해 묫바람, 산소 탈이라고도 합니다.”
 “묫바람이요?”
 “조상 중 하나가 불편하다고 소리치고 있는 거죠.”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돈이랑 사람을 쓰셔야죠.”

***

 “얼굴들 치우지.”

 안광 없는 새까만 눈이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그제야 사라지는 시선들에 윤은 혀를 한 번 차고는 관 뚜껑을 열었다. 자꾸 꿈에 나온다니 확인은 해야 하는데…

 “누가 이 할머니 틀니를 가지고 있나 본뎅.”
 “예?”
 
 서 있던 유족들이 조용해지더니 한 남자아이에게로 시선이 모여들었다. 가만히 서 있던 아이는 어머니의 다그침이 있고 나서야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랬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빠~! 송이 따 왔엉!!”
 “저녁에 걔네 올 거다.”
 “예현 오빠랑 힐데가 온다고?? 언제 연락왔는뎅!!”
 “오늘 아침에.”

 아미가 두 사람에게 줄 거라며 송이버섯을 오빠에게서 지켜내는 사이 가게 안으로 환한 불빛이 비쳐 들었다.

 “왔냐.”
 “어서 왕!!! 오랜만이야 예현 오빠!”
 “오랜만이야 아미. 잘 지냈어?”
 “난 잘 지냈징! 힐데도 오랜만이양!! 머리 많이 길었넹?”
 “네 기르는 중이에요.”
 “잘 어울령!”

 네 사람은 힐데가 가져온 술과 아미가 따온 버섯으로 쌓인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을 가져온 거양?”
 “미국에서 받은 의뢰인데, 두 사람의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
 “미국?”
 “장손들이 귀신병을 앓더라고요. 갓난아기까지.”
 “꽤 오래 버텼네.”
 “딱 보니 묫바람이라서요.”

 최 남매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의뢰인에게 연락하자 바로 오겠다는 답이 왔다.

***

 아미가 의뢰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남은 세 남성은 커피를 들고 차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왜 휴게소에서 대화하는 걸까요.”
 “취향이 이상한가 보지.”
 “윤!”
 “뭐.”

 선팅이 짙게 된 차는 내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조부님 성함이랑 직업을 알려주시겠어요?”
 “그게… 중요합니까..?”
 “말하시는 게 내키지 않으신가요?”
 “…두 가지만 지켜주시겠습니까? 모든 일은 비밀로 해주시죠. 그리고 화장도 바로 해주십시오.. 관 채로요.”
 “관 채로요? 개관을 안 하실 건가요?”
 “어렵겠습니까?”
 “일단 묫자리부터 한 번 볼까요.”

 산에 난 도로는 좁았다. 길을 따라 차 세 대가 줄지어 이동했다. 점점 높이 올라가자, 주위가 안개로 가득 차 산 아래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철창에는 굵고 녹슨 쇠사슬이 감겨있었다. 철컹 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어둑한 길이 드러났다.

 “아미. 여기 와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닝.”
 “아미가 안 가본 산도 있나요?”
 “난 명당만 찾아다녀성...”

 올라가는 길에는 거대한 나무 하나가 있었고 주변에는 붉은 여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낙엽이 쌓여 미끄러운 길을 올라가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공터에는 무덤이 하나 있었다. 작은 무덤이었다. 거창한 장식 하나 없이 놓인 무덤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날 바로 잡지.”
 “윤 오빠 잠시만.”

 아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무덤 위로 올라섰다.

 “비석에 이름이 없어.”
 “3..6…”
 “여기 위치인데.”
 “사장님 저희끼리 얘기를 잠시 나누고 와도 될까요.”
 “…예.”

 아미는 세 사람을 끌고 차로 들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윤도 얌전히 동생을 따라 들어갔다.

 “힐뎅. 아까 올라갈 때 여우 봤지.”
 “네.”
 “무덤에 여우는 상극이야. 알잖아. 저 무덤 잘못 건들면 줄초상 날 수도 있엉.”
 “아미,”
 “근데 난 하고 싶어.”
 “최아미.”
 “힐데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징?”
 “…네.”

 힐데베르트는 대살 굿을 해보자는 얘기를 꺼냈다. 예현은 준비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윤은 제 동생을 빤히 보더니 알겠다고 말했다. 힐데베르트가 의뢰인에게 말을 전하고 관을 꺼낼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대살 굿은 사람을 대신할 제물을 준비하여 사람에게 갈 악기를 무당이 대신 날려 보내는 굿이다. 힐데베르트는 돼지띠 일꾼 다섯과 죽은 돼지 다섯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무덤가에 사람들이 들어찼다. 예현은 돼지띠 일꾼들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 준비된 죽은 돼지들의 입에 넣었다.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힐데베르트가 무복을 입고 산에 올라오는 게 보였다.

 “사장님. 고모님께서 오셨습니다.”
 “….”
 “어머님께서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노인이 비서의 부축을 받고 서있는 게 보였다. 의뢰인은 고개를 짧게 숙여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무덤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현은 무릎을 꿇고 힐데의 신발 끈을 꽉 묶었다. 평소와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카락은 비녀로 정리되어 고정되어 있었고 굳은 표정과 하얀 무복을 입은 모습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인부들이 자리를 잡고 윤이 입을 뗐다. 제문을 읽는 동안 힐데베르트는 인부들을 검으로 훑었다. 윤의 목소리가 끊기자, 예현이 북을 치기 시작했다.

 천하궁에 삼십산천 지하궁에 이십팔수
 삼십산천 제불제천 금우태세 남선부주
 조선국을 마련할제 아태조 등극후에
 하거등에 터를닦아 좌자오향 지은집은
 관악산에 안내하야 인왕산이 청룡되어
 동구제만리 백호로구나.

 악기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힐데베르트가 몸을 움직였다. 인부들은 긴장한 눈치로 힐데베르트의 움직임을 살폈다. 몸에 검을 대어도 상처가 나지 않는 걸 본 아미가 의뢰인에게 손짓했다. 몸을 긴장시킨 의뢰인은 들고 있던 삽으로 무덤을 내리쳤다.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굿 소리 아래 인부들이 땅을 팠다. 윤은 인부들에게 굵은소금을 뿌리며 무덤가를 돌았다. 준비된 돼지들이 너덜너덜해지던 순간 아래에서 텅-. 소리가 울렸다. 윤이 예현에게 눈짓을 보내자 힐데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사이 머리는 반쯤 풀려있었고 얼굴과 손에는 피가 튀어있었다.

 “춥네.”

 몸에 소금을 짜증스레 치며 내려간 윤은 간단한 감상평을 내놓았다. 인부들은 관을 조심스레 꺼내 아래로 옮겼다.

 “죽기 싫으면 고기 먹지 마라. 그거 말고 다른 주의 사항은 다 알겠지.”

 아미는 빈 구덩이를 보다 백 원 동전 하나를 아래에 던졌다.

 “잘 쓰고 갑니다.”

 힐데베르트는 다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묻은 피를 마저 닦고 있었다. 관을 실은 운구차와 의뢰인은 이미 산을 떠난 상황이었다.

 끼에에에에ㅔㄱ-!!

 “…!”
 “선생님?”
 “아니야. 가자.”

***

 “오빠 거기 관 잠시 맡길 수 있는지 연락 좀 해주라.”
 “어.”

 비가 쏟아졌다.
 예보가 없었는데 내리는 비에 아미는 차를 멈춰 세우고 의뢰인에게 향했다.

 “사장님 비가 와서 당장 화장을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왜죠? 관을 야외에서 태우는 것도 아닐 텐데요.”
 “이런 날에 화장하면 망자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하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화장하면 됩니다.”

 의뢰인은 이 관에 대해 더 아는 사람이 늘어나길 원하지 않았지만, 아미의 설득에 결국 알겠다며 호텔로 돌아갔다.
 윤은 근처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으로 관을 옮겼다. 오전에 있던 팀이 빠졌다는 직원에게 돈을 쥐여주자 괜찮다면서도 봉투를 챙기는 모습이 익숙했다.

 “의뢰인은 서울로 먼저 갔고 힐데랑 예현 오빠는 이쪽으로 오고 있대. 병원 옆에 국수 맛있다던데 한 번 먹어봐봐. 난 어디 좀 들렸다 올겡.”
 “어.”
 “온도 설정은 내가 해놨으니까 밥이나 먹고 오지 그래.”
 “신경 꺼.”
 
 빗방울 사이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미가 추천해 준 국수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힐데베르트는 찜찜한 기분에 관을 한 번 더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윤이 알려준 위치로 가던 중 뭔가를 부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저기요 뭐 하세요?!”

 예현이 문을 열자 처음 보는 남자가 관뚜껑을 뜯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손을 움직이던 남자는 말릴 틈도 없이 관을 열어버렸고 힐데베르트는 그 안에서 나온 것이 몸을 스쳐 가는 걸 느끼며 쓰러졌다.

 “저기요!!!”
 “허윽..”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

 “뭐야.”
 “왔어?”
 “설명.”
 “선생님이, 여기 휴지요.”
 “고마워.”

 힐데베르트는 흐르는 코피를 틀어막고 윤을 쳐다봤다. 아미도 소식을 듣자마자 온 건지 윤의 뒤에 서 있었다.

 “뭔가가 선생님을 지나갔어.”
 “그게 무슨 소리야 예현 오빠.”
 “관에서 뭐가 나왔어요. …되게 험한 게.”

 아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힐데베르트는 그 혼이 자기 핏줄을 다 찾아갈 거라고 말했다. 일단 혼 부르기를 해볼 거라는 말에 아미는 자신이 의뢰인한테 가보겠다며 나섰다. 아미가 운전을 가장 빠르게 하는 사람이었기에 다들 동의했다.

 천과 금줄을 몸에 묶고 솔가지를 든 예현은 길게 숨을 뱉었다.

 “윤, 타이밍 잘 맞추셔야 합니다.”
 “알아.”

 힐데베르트는 징을 치며 경을 외웠다.

 사바세계 남선부주 해동조선 대한민국
 강원도라 이십육관 군을잡아서 고성군이요
 면을잡아서 죽왕면이요
 박씨 가정 권씨 용전 금일망자를 모실적에
 초단오귀 이단천근에 삼단세남실에 돌아오소
 반영실로 돌아오소 반정실로 돌아오소
 춘수가 만사택하니 물이 겊어서 못오는가
 와병에 인사절하니 병이 들어서 못오는가 마상에~
 옷이없어 못오시면 상주제복 돌아오소
 막대없이 못오시면 상장막대 돌아오소
 신이없이 못오시면 상주짚신을 신고 돌아오소
 목이말라  못오시면 삼석잔에 돌아오소
 집이없어 못오시면 신태집에 돌아오소
 일신썩어서 못오시면 초백리에 넋을잡고
 말이 모잘라 못오시면 무당각시 입을빌려 잠시라도 돌아오소
 고금사 생각하니 공도란이 백발이요 못 면하는 것이 죽음이라

 “실어라-!!!”

 솔가지를 들고 뛰던 예현이 손을 툭 던지며 자리에 멈춰섰다. 힐데베르트는 징을 들고 일어나 예현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유리에 비친 예현이 다른 사람인 걸 본 순간 예현이 힐데베르트에게로 달려들었다.

 “예현아 놓치마!!”

 윤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두 사람을 살폈다.

 “누구십니까.”
 “으으으윽!!”
 “뭐가 그렇게 억울하십니까. 오늘 여기서 다 풀고 가세요.”
 “하아… 하…”
 “다른 데 가지 마시고요.”
 “으흐… 내 새끼들… 데리고 갈라고… 으흐흐흐… 우웨엑…!”

 예현의 입에서 물이 쏟아졌다.

 “하아, 하..”
 “…놓쳤습니다.”
 “이제 어쩔 건데.”

***

띠리링

 “…여보세요.”
 “여보세요? 사장님 저 최아미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하지만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예. 무슨 일이시죠?”
 “제가 곧 호텔에 도착할 것 같은데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똑똑똑.

 “잠시만요. 누구십니까?”
 “저 최아미입니다!”

 멈칫.

 “예? 저거 뭐죠?”
 “…최 선생님 지금 밖에 계시는 겁니까?”
 “아뇨! 아니에요!! 저건 제가 아니에요! 지금 할아버님 관이 열려서 그래요.”
 “예? 저, 저희 할아버지 관이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 문을 절대 여시면 안 돼요. 제가 금방 도착하거든요?”

 문손잡이가 마구 덜컹거렸다.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은 모습에 남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문에 절대 가까이 가지 마시고요. 창문 쪽으로 가세요.”

 콰앙-!!

 “사장님!! 지금 상황이 급해서 그래요!! 문 좀 열어주세요!!!”
 “대답도 하지 마시고, 듣지도 마세요!”
 “흐..”
 “일단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여세요. 할아버지가 당신을 지켜주실 거에요.”

 남자는 천천히 창문으로 뒷걸음질 쳤고 창문 손잡이에 손이 닿을 거리가 되자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을 열라니까!!!!”

 열린 창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흐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

 병원에 있던 세 사람은 관을 운구차에 실었다.

 “최아미. 이거 가만히 두면 다 죽어. 난 바로 화장터로 갈 테니까 네가 허락을 받아내.”
 “알았어 오빠.”

 의뢰인은 피를 쏟아내더니 물을 끝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아미는 그걸 긴장한 상태로 쳐다보다 화장 허락을 받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금 할아버님 관이,”
 “그게 무슨..!”

 연락을 받고 온 집사가 말을 끊고 놀라던 순간 냉장고에 들어있던 모든 물을 마신 의뢰인의 목이 천천히 아미에게로 향하다 완전히 돌아갔다.

우둑-.

 “…!!!”

 유리 장식장에 웃고 있는 혼이 비쳤다.

 “산에 오셨던 할머님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 관을 화장시켜야 해요.”

 집사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고모님 지금 관에서 아버님의 혼이 나왔다고 합니다. 빨리 화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 집사에게서 아미는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고모님, 서두르셔야 해요. 아버님께서 미국의 아이에게 가고 있습니다.”

 호텔의 1층은 앰뷸런스의 빛과 몰려든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아미는 손을 쥐었다 펴며 허락이 나오길 기다렸다.

 “늦어.”
 “잠깐, 윤!!!”

 초조하게 관을 바라보는 예현과 힐데를 보던 윤은 화장 버튼을 눌렀고 관은 불길에 휩싸였다.

 “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애 죽이려고?”
 “그건! …하.”

 자신의 오빠가 이미 관을 태워버렸다는 걸 모르는 아미는 구급차 안에서 덜컹거리는 의뢰인의 몸을 보다 허락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화장하세요.”
 “오빠 태워.”
 “이미 태웠어.”
 “뭐?? …알았엉.”

 관은 타올랐지만 의뢰인의 손은 생명을 잡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

 “잘 지내셨어요?”
 “힐뎅, 예현오빵!! 어쩐 일이양!”
 “선생님이 선물 받은 버섯으로 좋은 술을 담구셨거든.”
 “같이 먹을까 해서요.”
 “당연히 좋징!! 윤 오빠! 나와 봐!”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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